2008년 08월 19일
교육자는...? (야누쉬 코르착)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 있는 교육자들이다.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을 완전히 용서하는 능력 말이다. 중얼거리고, 불평하고, 소리지르고, 으르렁거리고, 위협하고, 벌을 주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도 교육자는 모든 탈선이나 위반, 잘못들 자체에 대해 관대하게 판단해야 한다. 아이의 잘못은 그가 알지 못했고, 충분히 생각하지 못해서였고, 유혹과 꼬드김에 굴복 당했으며, 뭔가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달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던 것이다.
부드럽고 관대한 교육자는 때로 전임자의 잔인한 독재에서 비롯된(그룹의) 증오와 분노의 집단적인 공격을 인내심 있게 참아내야 한다. 반항적이고 고집스러운 행동은 일종의 시험이고 시금석이다. 극복하고 참는 것- 그것은 승리를 의미한다.
교육자는 아이가 아이 모습 그대로이고, 태어난 그대로이거나 혹은 경험이 가르친 대로이기 때문에 화를 내고, 토라지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 분노가 아니고 슬픔이다. 아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의 고독한 여정 속으로 삐딱하게 가는 것은 슬프다. 단조로운 수레바퀴나 혹은 날카로운 사슬들과 같은 데로 말이다. 아이가 먼저 그 쪽으로 자신을 여는 것이 슬프다. 분노가 아니라 슬픔, 그리고 복수심이 아니라 동정심이다.
당신은 정말로 화를 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아이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으며, 약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지를 보라.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오늘 어떠한지를 말이다. 이른 아침, 아이의 즐거운 외침과 짙푸른 미소를.
아이는 자신이 가진 결함을 느끼고 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회복하기를! 아이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였던 사람이나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사람을 기억한다면, 아이의 삶에서 얼마나 강한 도덕적인 동기가 될 것인가, 아이를 사귀고, 아이에 대해 알며, 호의적으로 기억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교육자이다.
야수들을 조련시키는 작업은 얼마나 성실하고 값진 것인가. 조련사는 거친 충동이나 분노에 동요되지 않고 일관된 의지로 대응하며, 정신을 통해 야수를 지배하는 것이다. 숨을 멈추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채찍과 권총이 아니라 온화함으로 말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호랑이와 사자와 다를 바가 없다. 잔인한 교육자가 유순한 아이를 얼마나 거칠게 만들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보면 놀랄 것이다.
교육자는 먼 미래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부과할 필요는 없지만, 오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들은 거꾸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책임을 미루고, 그것을 모호한 내일로 넘기는 것은 오늘의 모든 시간에 대해 결산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교육자는 간접적으로는 사회의 미래에 대해 책임이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자기 제자의 현재에 대해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
교육적 이론과 실제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그는 성숙한 교육자가 아니다. 교육자는 더 이상 책에서 배우려 하지 말고 실천으로 배워야 할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 온 힘을 기울여 이론의 진실과 실천을 결부시키고자 하는 도덕적인 힘이 가장 중요하다.
# by | 2008/08/19 23:36 | 교육사상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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